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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인 사랑의 열매(III)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기사입력  2016/05/09 [14:36]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강영우 박사의 부인 석은옥 여사의 고백을 계속 들어보자.)
“나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항상 잘하다가 한 번 실수했는데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해서 섭섭한 마음에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이 미국에 와서 처음 한 부부싸움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보행 훈련을 받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혼자 강의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미루던 차에 결단의 기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행훈련을 받아도 자주 다니지 않은 곳이나 생소한 지역을 갈 때는 여전히 정안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보행훈련을 받아 나에 대한 의존도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안내해주어야 했다.
 
어린 두 아들을 남에게 맡긴 채 남편의 대학원 강의실을 향해 떠날 때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강의가 먼저였다.
 
맹인 아빠에게 젖먹이 아기를 맡기고 도서관에 가거나 심부름을 갈 때면 혹시 불이라도 날까 불안했지만 그의 눈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것이 먼저였다. 몸이 아플 겨를도 없이 매일 동분서주하는 고달프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후,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수업료는 문제가 없었는데 생활비로 나오던 장학금이 만료된 것이다. 닥치는 대로 막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병원 청소원으로 겨우 취업이 되었는데 이민국에서 노동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캠퍼스 근처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한 맹인 여성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다가가 한국에서 유학 온 맹인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네를 밀어주던 남자가 자신이 남편이라고 했다. 과부가 홀아비 사정을 안다고, 우리 사정을 이해할 것 같아서 초면에 우리 형편을 털어놓았다.
 
그 부부는 우리에게 자기 집 3층을 내줄테니 와서 함께 지내라고 했다. 대신, 식사 후 설거지를 해주고 두 내외가 외출할 때 어린 두 자녀를 돌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가족의 생계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집에 살면서 매일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머지않아 박사가 될 남편을 내조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남의 식모살이나 하는 처지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 오히려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더 행복했다. 우리와 처지도 같고 동년배라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를 배우는 계기도 되었다. 또 두 살 된 진석이도 네 살, 다섯 살이던 그 집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둘째 아이 진영이가 생겨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절대 좌절하거나 울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맹인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내외는 출세지향적이 아닌 성취지향적 가치관을 갖고 있어 맹인이기 때문에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
 
또 쾌락보다는 보람을 추구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할 때마다 승리감과 보람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25일 남편이 드디어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당국의 배려로 박사복을 입은 남편을 총장 앞으로 안내하면서 느낀 보람과 행복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즐긴 것은 결코 잊히지 않으며 자신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는 헬렌켈러의 말이 생각났다.
 
물론 아무나 맹인의 아내가 되어 어려운 내조를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어 때로는 희생을 요하는 힘겨운 내조를 할 때도 그 일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록 학사복을 입었지만 남편이 받은 박사학위가 나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느껴져 더 행복했다.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겹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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